阮籍(완적)의 영회시(詠懷詩) 한시예기

-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

阮籍(완적, 210-263)은 위(魏)나라 때 문인으로 자는 사종(嗣宗)이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영수(領袖)로서 유명합니다. 후한(後漢)의 명문호족 출신으로 아버지 완우(阮瑀)는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이며 조조 밑에서 일했습니다. 술과 기행으로 일관한 완적의 행적 밑바탕에는 강한 개성과 자아 외에도 노장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쉽게 시비를 판단하거나 정치에 연루되지 않으려 했던 그는 고통스럽고 불안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문득 술에 취해 미친척했습니다. 완적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돼지를 삶고 술을 마셨으나 지인들과 헤어질 때는 호곡일성(號哭一聲) 피를 토했다고 합니다. 그의 속내는 여전히 꼿꼿하고 굳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에 드는 벗을 만나면 청안(靑眼)으로 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면 백안(白眼)으로 대하여 ‘백안시(白眼視)’라는 고사를 만들어냈습니다. 후세 연작시(連作詩)의 선구가된 ‘영회시(詠懷詩)’ 80여 수는 고독한 영혼의 독백입니다. 이 시는 그 첫 번째 작품입니다.


    夜中不能寐 (야중불능매) 깊은 밤 잠 못 이루어
    起坐彈鳴琴 (기좌탄명금) 일어나 앉아 거문고를 타려니
    博帷鑒明月 (박유감명월)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치고
    淸風吹我襟 (청풍취아금) 맑은 바람 옷깃에 스며드는데
    孤鴻號外野 (고홍호외야) 외로운 큰 기러기 들판에서 애처롭게 울고
    翔鳥鳴北林 (상조명북림) 둥지를 찾아드는 새 북쪽 숲에서 우짖는다.
    徘徊將何見 (배회장하견) 배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憂思獨傷心 (우사독상심) 근심스러운 심사에 홀로 마음만 상할 뿐이네.


* 博帷(박유) : 엷은 휘장/ * 鑒(감) : 비치다, 비추다. 감(鑑)과 동자(同字)이다./ *금(襟) : 옷깃, 마음, 가슴/ *호(號) : 부르짖다. 큰소리로 울면서 한탄하다./ *상조(翔鳥) : 빙빙 돌며 나는 새. 둥지를 찾아드는 새. ‘翔(상)’은 ‘선회하다’, ‘돌다’/ *徘徊將何見 (배회장하견) : 배회한들 장차 무엇을 볼 수 있으랴! 배회한들 소용이 없다는 말.

이렇듯 잠 못 이루는 시인의 근심 내지 아픔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마지막 두 구절에서는 차라리 체념한 듯한 고백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시대를 잘 못 타고난 고뇌, 아무리 바꿔보려 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상황, 그로 인해서 생기는 번민이 이 시 전반에 가득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시(詩)들도 시대상황 때문에 얼마나 암울하고 고뇌에 찼었던가요. 태평성대에도 좋은 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살기 힘든 암흑시대에 고통을 딛고 더 좋은 예술작품이 많이 나오게 되는 모양입니다. 역시 예술은 시대와 상황이 어려울수록 개인의 고뇌가 깊을수록 더욱 깊이 있는 사색을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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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령도살자 at 2008/10/02 23:12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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