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팔복) 시얘기1

윤동주의 ‘무서운’ 아이러니
−‘팔복’ 깊이 읽기−

아이러니는 일본인들이 ‘반어(反語)’로 번역하여 우리도 이 말을 가끔 쓰지만 우리 토박이말로는 “비꼬기”라 하는 게 나을 듯하다. 본시 옛 헬라 사회에서 힘세고 잘난 듯이 구는 사람 앞에서 약하고 못난 듯이 구는 사람, 그래서 그 잘난 듯이 구는 사람을 슬쩍 골려 주던 ‘똑똑한 바보’를 가리키던 ‘에이론’이란 말에서 ‘아이러니’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아이러니는 하는 말과 그 속뜻이 전혀 다른 경우에 생기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빈정대는 말투이다. 풍자 문학에서는 그런 말투를 매우 재치 있게 쓴다. 그러나 엄숙하고 심각한 문학에서도 아이러니는 많이 쓰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테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천하에 몹쓸 놈이 있어 나라에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니 그 놈을 꼭 잡고야 말겠다고 오이디푸스 왕이 결연히 나서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자기가 그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처럼 의도와 결과가 전혀 다르게 드러나는 “무서운” 아이러니는 심각한 비극의 필수 요소이다. 이러한 비극적 아이러니에서 우리는 빈정대거나 비꼰다는 느낌을 갖지 않지만 일상생활이나 풍자적인 글에서 아이러니는 으레 비꼬고 빈정대는 말투이다.

우리는 윤동주 같은 순수, 순결한 시인이 빈정대는 아이러니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심각한 시인들처럼 그도 ‘무서운’ 아이러니를 매우 효과적으로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팔복(八福)」은 아마 그의 가장 ‘무서운’ 아이러니를 담고 있을 것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이것은 그 자신이 부제에서 밝히듯이 신약 「마태복음」 5장 3절10절에 대한 암유(暗喩, allusion)이다. 이 부분은 예수의 유명한 ‘산상보훈’으로서 진정한 교인이 누리는 여덟 가지 복(팔복)을 열거한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절10절)

이 여덟 가지 복을 나열한 후에 예수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11절12절).”고 결론적으로 말했다. 예수가 말한 복은 모두 현실적 행복이나 부와는 관계가 없는 ‘결핍’들이다. 그가 말한 대로 “가난한 자에게 주는 복음”이다. 이 ‘결핍’들이 ‘복’이 된다는 예수의 선언 자체가 극히 역설적이다. 본시 예수의 가르침은 전통적 종교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전복적이었다.

제1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옛 번역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로 되어 있었고 또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음이 넉넉하여 교만하고 난척하는 사람은 세속적으로는 복을 받은 잘난 사람이지만 마음이 ‘가난한 자’ 곧 마음이 비어 있는 겸허한 사람은 세상에서는 결핍을 겪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애통하는 자는 세속적인 의미의 환락이 없는 자이며, 온유한 자는 남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므로 남을 내리누르고 자기주장을 해야 인정을 받는 세상에서 결핍을 자초하며, 정의의 실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 불의의 압박을 받고 정의의 부재라는 결핍을 겪으며, 세상 사람들은 불쌍한 이웃을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몰인정하여 마음에 거리낌 없이 편히 살지만 그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늘 안타까우니 이는 큰 결핍이며, 세상 사람들은 욕심과 욕망으로 마음이 가득하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세속적 욕심, 욕망이 가져다주기도 하는 세속적 행복의 결핍을 겪는 사람이며, 세상 사람들이 경쟁, 분쟁, 전쟁에 열심을 내나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은 경쟁, 분쟁, 전쟁을 일삼는 사람들의 승리, 쟁취의 환희가 결핍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여덟 가지 결핍을 겪는다는 것은 세속적으로 보아서는 아주 불행한 처지이다.

기독교의 이 여덟 가지 ‘복’은 우리나라의 다섯 가지 ‘복’과는 성질상 전혀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찍이 중국의 현실주의 문화를 받아들여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 하여 ‘오래 살고, 돈 많고, 건강하고, 덕망 높고, 제 명 다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복이라 믿고 또 그런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 도덕적 생활이라고 믿었다. (이 밖에 민속적으로 아들이 많고 이가 좋은 것이 복의 조건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오래 묵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서에서 기독교가 말하는 ‘결핍’이 복이 된다는 것은 우선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왕조의 피지배 계층이었던 평민 또는 상민은 누구나 현실적 결핍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다. 그러한 현실적 결핍에 더하여 마음의, 정신의, 심령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조선 왕조 말엽과 일제 식민 압제를 겪으면서 차차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윤동주는 세속적인 의미의 풍요를 독점한 조선말의 지배 계층과 얼마 후에는 근대화라는 풍요를 구가하는 일본의 압제 세력에 밀려 조선 땅에서 쫓겨나 중국의 한끝 간도로 생활 터전을 옮겨간 사람들의 자손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의 조상들은 현실적 결핍을 피하여 그 풍요를 얻고자 그리로 옮겨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쯤 현실적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자 또 다른 종류의 결핍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개화기의 많은 한국인들처럼 그 결핍을 그들은 기독교에서 채우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1902년생인 필자의 선친은 평안남도의 넉넉한 집안 형편을 버리고 3.1. 운동 직후 무단가출하여 4년간이나 간도에서 방황하였는데 그 역시 개화기의 특징이었던 한없는 결핍감에 몰려서 그리하였고 그 역시 기독교에서 그 결핍의 만족을 얻었다. 추모집 간행 위원회 편, ‘속사람과 겉치레: 진해 이환신 감독의 생애와 명상’(1987) 참조.

그러나 윤동주는 제2, 3세대의 기독교인이었으므로 그의 조부모나 부모 세대의 정신적 결핍을 채워 준 기독교의 통상적 가르침에 쉽사리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가 연희전문 상급반 시절과 졸업한 뒤에 탐독하였던 책의 저자가 키르케고르(Kierkegaard)였다는 사실은 그가 깊디깊은 결핍, 나아가 ‘절망’이라는 괴로운 ‘병’에 위험하게 노출되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읽은 키르케고르의 책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 ‘두려움과 떨림’ 같은 ‘무서운’ 책들이었을 것이다. ‘절망’, ‘두려움’, ‘떨림’, ‘불안’, ‘죄책감’ 따위의 영혼의 ‘죽을 병’에서 헤어 나와 신이 주는 최고의 복인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키르케고르는 강렬하게 ‘꿈틀거리는’ 문장으로 파헤쳐 나갔다. 윤동주처럼 극히 민감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런 문장에 깊이 빠져들게 마련이다.2) 그가 키르케고르를 탐독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일반 철학사나 백과사전 따위에서 언급되는 그의 “심미적” 대 “윤리적” 선택론은 실상 그의 시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윤동주가 키르케고르에서 얻은 것은 심미적 차원을 넘어서는 윤리적 차원뿐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이는 윤동주가 가장 감명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다. 요즘의 한국인은 키르케고르를 깊이 읽지 않는다.

‘팔복’은 그렇게 키르케고르 식으로 그의 영혼이 심하게 전율하던 시기, 곧 그가 연희전문 3학년을 끝내던 1940년 말에 지은 것이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바야흐로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려 하던 때, 소위 창씨개명 등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강압 정책을 강화하던 때였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전해진 복음 중 복음이라는 산상수훈의 여덟 가지 복에서 단순하게 감동하고 위로받을 수 없는 영혼의 깊은 늪에 빠져 있었다. 여덟 가지 복은 당시 그에게는 결핍을 지나쳐 절망과 꼭 같은 뜻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 여덟 가지 결핍은 결국 한 가지로 ‘슬픔’에 귀착할 뿐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덟 겹 슬픔으로 반복될 뿐이었다. 원고를 보면 애초에 ‘팔복’이라는 제목 다음에 ‘마태복음 5장 4절’이라는 부제가 적혀 있었다. 바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절이다. 즉 그는 제2복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그 여덟 가지 ‘복’의 대표로 삼았던 것이다. 슬퍼하는 것이 복이 된다는, 역설 중의 역설에 붙잡혀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팔복’은 그의 의식 속에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는 ‘팔복’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가 ‘애통(哀慟, 哀痛)하다’라는 한자어를 ‘슬퍼하다’라는 토박이말로 바꾸어 쓴 것은 한국인의 피부적 느낌을 더욱 절실히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자어는 ‘아프게 슬퍼하다’란 뜻이니 더 강렬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직접성은 떨어진다. 동일한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얻는 효과를 그는 아마도 이상의 ‘오감도’ 따위에서 배웠는지 모른다. 그는 이상의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이상을 주의 깊게 읽어보았으되 더 따르지 않은 것은 우리 시 문학사를 위해 큰 다행이다. 그는 지적인 언어유희에 빠지지 않았다.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대한 대구를 찾는 데에 적이 고심한 듯하다. 성경에는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아픈 문제는 ‘위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성경에도 결코 위로 받을 수 없는 슬픔에 대한 언급이 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예레미아 31:15).” 이렇게 통상적인 위로가 불가능한 절대적 슬픔을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다. 자필 원고를 보면 처음에 그는 “저희가 슬플 것이요”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것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의 여덟 번 반복에 대한 대구로서는 우선 리듬이 맥없이 깨진다. 게다가 그 뜻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쳐 성경에 나오는 대로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요”로 썼다. 이게 리듬으로는 낫다. 그러나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이나 반복한 것은 오로지 슬플 뿐임을 강조한 것인데 그냥 성경 구절을 그 대구로 인용한다는 것은 ‘위로’가 아주 쉽게 주어진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을 부인하기 위해서 슬픔을 여덟 번이나 반복했던 것임에랴! 그래서 그는 “저희가 오래 슬플 것이요”로 고쳤다가 드디어는 ‘오래’를 지우고 그 대신 더 적극적이고 종교적이기도 한 ‘영원히’로 고쳐 쓴 것이다. (육필 원고의 중요성이 여기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시적 의도의 전개를 보여 주므로 올바른 해석의 방향을 가리킨다.)3)

육필 원고에 나타나는 수정의 과정을 보면 시인의 의도가 완성을 향하여 어떻게 움직여 갔는지를 알 수 있다. 뉴 크리티시즘은 완성된 작품만을 비평의 대상으로 한다는 근거 없는 비판을 받았지만 학습자가 원고 수정에 나타난 시인의 의도를 알아보게 하는 방법을 도입한 것은 뉴크리티시즘의 정교재라고 할 Understanding Poetry(4판, 1974)이 처음이고 끝일 것이다. 여덟 가지의 큰 복들이 합쳐 한 가지의 영원한 슬픔이 되는 것이니, 이는 당연한 기대에 대한 전혀 뜻밖의 결말이다. 이런 결말이 가장 심각한 ‘비극적 아이러니’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적 ‘뒤바뀜’이다. ‘뒤바뀜’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페리페테이아peripeteia’를 옮긴 말로서 종래에 ‘역전逆轉’으로 번역되었지만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연구”(문학과지성사, 2002)에서 그렇게 우리말로 옮기고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6467, 205~216쪽 참조).

모든 위대한 비극이 그렇듯 기대에 대하여 그 결말은 전혀 뜻밖이지만 그 결말밖에 다른 결말은 있을 수 없다는 필연성의 느낌을 준다. ‘팔복’은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결말 이외에 다른 결말이 있을 수 없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결말에 도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프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나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으므로 ‘영원히 슬퍼하는 자’는 영원히 복이 있다는 역설도 성립된다. 말을 바꾸어 영원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영원히 슬퍼해야 한다는 말도 성립된다. 이는 물론 정확한 의미의 강렬한 역설이다. 강력한 아이러니는 이처럼 독한 역설이 된다. 김재홍은 ‘팔복’에 대해서 “현실의 고통과 운명의 슬픔을 인정하고,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이려는 기독교적 수난 의식과 긍정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운명애와 부활 정신’, 권영민 엮음, “윤동주 연구” 문학사상사, 1995, 237~238쪽)”라고 해석하는바, ‘역설적 읽기’를 주장하는 필자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해석이다.

‘팔복’에서 윤동주는 그가 평상시 그의 가족과 같이 믿은 기독교 자체를 비꼬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는 실상 기독교 신앙의 한 특질인 깊은 내성적 모험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키르케고르는 그의 위대한 선배였다. 그는 키르케고르처럼 기독교의 일반적, 상식적 교리와 관행을 초탈할 만큼 예민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그러한 초월적 차원을 가질 수 있지만, 키르케고르는 막연히 신의 절대성을 전제하고 세상의 만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안주하였던 당시의 신학과 특히 헤겔 철학의 외피를 꿰뚫고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던 사람이다. 고향에서 윤동주는 매일 자신의 할아버지가 주재하는 가정예배를 보았고 주일이면 가족과 함께 예배당에 출석했고 연희전문 시절에는 매일 아침에 열린 기도회(채플)에 참석해야 했으며, 주일에는 학교 건너편 이화여전 강당(지금의 중강당)에 있던 협성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필자는 1947년-50년 사이에 바로 그 협성교회 유년주일학교를 다녀 수료했다. 수료증이 아직도 내게 있다. 내 형님을 비롯한 연희대학과 이화여대 학생들이 주일학교 교사였다. 윤동주도 고향에서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했다. 필자도 오래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슬픔’에 대한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 슬픔을 쉽게 회피하거나 처리하지 않고 깊이 파고들었다. 바로 이러한 끈질긴 태도가 진정한 의미의 종교성이요 경건성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은 맨 끝 행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를 한 줄 띄어서 썼다는 것이다. 이는 이 한 줄을 앞의 “슬퍼하는 자는...”의 여덟 줄에 맞서는 대구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맨 끝 한 줄로 그 앞 부분의 리듬과 논리와 내용 모든 것을 맞받아내는 구조를 이룬 것이다. 이런 대구 구조는 ‘서시’(‘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사랑스런 추억’(‘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무서운 시간’(‘나를 부르지 마오’), ‘흐르는 거리’(‘이 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등 주로 후기의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쓰였다. 윤동주는 언제나 시의 리듬에 민감하였다.

두 가지를 덧붙인다. 첫째로, 윤동주는 ‘팔복’을 쓰고 난 뒤 그 원고지 뒷장에 ‘위로(慰勞)’라는 시를 새로 지어 적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가 절대적 슬픔의 위로에 대하여 계속하여 아프게 느끼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겠다. 둘째로, 연희전문 졸업 전에 시집을 내려고 19편의 작품을 골랐는데 그중에는 이 ‘팔복’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신 그 뒷장에 쓴 ‘위로’를 포함했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상섭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by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