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 사는얘기

- 장사익 소리판 ‘꽃구경’/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11월22일(토)18:00 -
  
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동짓달에 무슨 꽃구경이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사실은 어제 부산시민회관에서 공연된 ‘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장사익’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민요 연구회 회장인 ‘박호갑’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는 제1집 음반인 ‘하늘 가는 길’을 선물로 주면서 ‘장사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창법, 스승을 두거나 정규적인 음악 공부를 않고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천재성, 매스컴을 타지 않고 입소문만으로도 사람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니는 타고난 소리꾼, 꽃으로 말하면 야생화와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게 벌써 4, 5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 경주 안압지에서 야외 국악 창작 오페라 공연에 참석했다가 초청 가수로 열창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저는 그의 소리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는 1994년 전주대사습에서 '금산농악' 태평소 연주로 장원을 했고, 사물놀이팀 '노름마치'의 태평소 담당이었습니다. ‘서태지’가 <하여가>를 부를 때도 태평소를 불었으며, 가끔 ‘임동창’과 협연을 하며 포효하던 마흔 아홉에 첫 음반을 내며 빛을 보기 시작한 늦깎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찔레꽃’이나 ‘하늘 가는 길’, ‘국밥집에서’, ‘귀가’ 등 그의 노래를 들으면 노래한다고 하기 보다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림을 알 수 있습니다. ‘장사익’ 노래의 대부분은 우리 민중들의 삶과 정서인 한(恨)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곡 했다고 하기보다는 소리를 빚어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적절한 표현일 듯합니다. 그의 노래는 바로 자신의 가슴속에 묻힌 삶의 시름과 슬픔을 끄집어 풀어내는 내면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가슴 저미는 슬픔이 베여 있고 영혼을 붙잡는 위로와 구수한 신명이 깃들어 있습니다. 흥얼거림이나 읊조림 형식을 띄거나, 시에다 곡을 붙여 철학적인 깊이를 담고 있는 노랫말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한번 들으면 식상해지는 요즈음의 노래들과는 달리 심금을 울리고 인생의 의미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줍니다. 음악적인 형식도 국악과 민속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독특하고 색다른 감흥을 일으킵니다.

집에서 시디를 들으면서 어느덧 ‘장사익’의 열렬 팬이 되어 버린 탓인지 이번 공연은 아내가 직접 인터넷으로 예약했고 거금을 투자하면서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좌석은 완전 매진되어 암표상이 호객을 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박수를 받으며 하얀 두루마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그가 등장하고 죽음, 삶, 꿈으로 구성된 3부작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피아노, 기타, 해금, 나발, 모듬북, 장구, 꽹과리, 첼로, 드럼 그리고 남성 5중창의 백코러스가 어우러진 약 두 시간 반 동안 우리는 장사익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김형영’의 시에 곡을 붙이고 이번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꽃구경’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 세상이 온통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다들 등에 업혔네. /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 꽃구경 봄 구경 눈 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고려장하러 가는 아들의 등에 업혀 죽음의 길을 가는 어머니의 한과 서러움이 아들의 돌아갈 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승화되는 대목에서는 돌아가신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만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그의 구수한 목소리는 꽃구경이라는 화사한 배경으로 인해 더욱 더 처연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되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삶과 죽음의 찬미입니까?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초월, 자연과 삶에 대한 긍정 없이는 결코 고백할 수 없는 시인의 순진무구한 삶의 태도를 이렇게 노래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장사익’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김용택’ 시인의 ‘이게 아닌데’에서도 그의 자작시 ‘찔레꽃’에서도 생의 슬픔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만약 비오는 날에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하는 ‘찔레꽃’ 후반부를 들으면서 슬프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목석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사모곡인 ‘바보 천사’, 업보처럼 짊어진 역마살로 인해 떠돌이의 애환을 노래한 ‘장돌뱅이’, 나이트클럽 분위로 간다며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 ‘진정 난 몰랐네.’ 그리고 앵콜 송으로 부른 ‘아리랑’ 등에서도 예외 없이 짙은 한과 슬픔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아무리 흥겹고 신명 난 가락이라도, 아무리 삶이나 꿈과 같은 제목을 붙이더라도 그가 부르면 모두 진지함과 한과 애절함과 슬픔과 눈물의 정서가 덧칠되는 것은 ‘장사익’ 표 한(恨) 때문일까요? 아니면 깨끗이 차려 입은 그의 한복과 검정고무신의 장터 스타일이 주는 선물일까요? (2008.11.23.)


Commented by 블로그 운영자 at 2008/11/25 10:09
안녕하세요. 엠파스 블로그 운영자입니다. ^ㅁ^
축하합니다~ ryong 님의 글이 <블로그 라이프>에 선정되었습니다.
글의 게재를 원치 않으실 경우 '운영자 블로그'의 방명록에
제외 신청하여 주시면 해당 글을 제외하여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D

- 엠파스 블로그 운영자 드림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8/11/25 21:14
몇년전 제 아들놈이,엄마! 이곡 한번 들어보세요.
하며 한장의 시디를 주더라구요.
어머! 이사람이 누군데 하며 시디를 틀어봤지요.
세상에... 몇칠을 듣고 또들었지요
진짜루 이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분 노래에 안 빠져 들을수가 없더라구요.
찔래꽃 향기는 너무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너무 너무 노래가 좋아 종종 듣고 있답니다.
언제 인천에서 공연이 있다면 무순 일이 있어도 꼭 가 볼렵니다.
Commented by 빛이든창 at 2008/12/02 10:42
꽃구경 가보고 싶어지는데요.
점점 삭막한 분위기를 소리판에서나마 잊고 싶어집니다.
Commented by 햇살 at 2009/05/31 09:17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의 꽃구경..요즘 애들 잘 하는 손바닥 따악 마주치고 싶군요^^
찔레꽃 시디를 듣기만 해 오다가 실제 공연을 들은적 있는데요. ryong님 글 읽고 또다시 울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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