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noodle) 사는얘기

먹는 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또 한편 고역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결정이 쉽지 않고 먹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수고가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세끼 중 아침은 아주 간단하고 제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청국장 가루 한 컵을 우유에 타서 마시고 과일 몇 조각을 먹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심은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을 모두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학교 구내식당에 갈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 나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구내식당을 갈 때는 아침처럼 메뉴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부실할 때가 많고, 햄이나 튀김, 오뎅 국과 같이 싫어하는 음식이 나올 때는 식사 자체가 고통스러워집니다.

학교 밖으로 나갈 때는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는 좋은 점이 있는 반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지출되어야 하고 또한 선택하는 자체가 어렵고 힘 드는 일입니다. 여유 있게 식사를 하려면 점심시간 앞뒤로 한 시간이 비어야 하고 한 번 나가면 두 시간은 족히 투자해야만 합니다. 또한 누구와 갈 것이며 어느 식당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선택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시간이 맞는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아예 회비를 미리 내고 정기적으로 식사투어를 하기도 했습니다. 보통은 주로 비슷한 연배끼리 다니게 되는데 한 번 얻어먹으면 한 번 대접하고 하는 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는 서 선생님을 따라가 두구동에서 비빔국수를 먹었는데 식당 건물 외벽에 큼직이 달아 놓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국수’라는 플랜카드처럼 정말로 맛이 있었습니다. 원래 음식을 싱겁게 먹는 제게 양념이 다소 매웠지만 그 맵싸하고 얼얼한 뒤끝은 아주 단아(端雅)하면서도 자극적입니다. 자기들 말로는 수십여 가지나 되는 야채와 과일을 자연 발효시켜 만들었다고 하는 국숫물이 독특한 요리 비법이라고 합니다. 그 맛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이한 느낌으로 입맛을 돋우고 있습니다. 비빔국수인데도 냉면처럼 벌건 국숫물이 있고 김치, 상추, 배, 양파, 당근, 오이채 등의 온갖 채소들이 얹혀 나왔습니다.
저는 국수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는 국수대한 추억을 몇몇 가지고 있습니다. 택시기사들이 주로 가는 연산동 국수골목 ‘원조집’은 기계면이지만 맛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구서동에 있는 ‘구포국수’는 담백한 맛으로는 최고입니다. 양정의 녹차 손칼국수도 그 향과 독특한 부드러운 맛에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김해 공항 가는 길에 등나무가 있는 인심 좋은 국수집은 여러 가지 반찬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면을 추가로 그냥 주는 인상적인 집입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안의 할매 국수집도 잊을 수 없습니다. 몰려드는 손님들이 눈요깃감이 되어 맛이 더해지는 집입니다. 맛을 비교하면 이제 이 두구동 비빔국수는 명품 국수의 반열에 당당히 들어가기에 충분합니다.

옛날부터 생일 같은 길일(吉日)에는 국수가 반드시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르신들은 국수 가락처럼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아이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국수를 삶은 것입니다. 결혼을 국수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부부의 인연이 국수처럼 길게 이어지라는 기원이 담긴 것입니다. 옛날 요순시대의 팽조(彭祖)는 800세를 살았는데 이는 얼굴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꼭 면장수장(面長壽長)이라는 민간신앙적인 측면은 논외(論外)로 치더라도 음식에서 가금씩의 외도(外道)가 삶의 적당한 활력소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200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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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룻배 at 2008/03/29 08:06
아침에 글을 읽으면서 침을 삼키게 됩니다.
벌건 국물과 온갖 채소들이 눈에 보이고 입으로 느껴져서요.
제가 식전이라 많이 출출한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ryong at 2008/03/30 19:28
그렇시군요.
맵싸한 맛은 우리의 식욕을 돋우어
입맛을 되찾게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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