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약산 산행 사는얘기

 
- 디카를 챙기지 않아서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지금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몸도 노곤하며 온 삭신이 저려옵니다. 겨울 산행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밀양에 있는 재약산에 갔다가 조금 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좀 쉬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고 나무라는 아내의 핀찬을 들으며 지금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사람처럼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겨울방학의 끝물이고 금년 신학기에는 인사이동이 대폭적으로 있기에 여고 선생님들과 마지막 추억 만들기 겸해서 산행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앞장서서 가자고 부추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산을 올라보니 그것은 완전히 오산이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이 대견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오른쪽 무릎이 원래 좋지 않았는데 오늘 산행으로 완전히 탈이 난 것 같습니다. 지하 주차장 계단을 올라 올 때는 엉금엉금 기어올라야 할 만큼 통증이 왔습니다. 지금 파스를 두개나 붙이고 있으나 상태가 온전치 않습니다.
 
 8명의 등반 팀이 오전 8시에 학교에 집결했습니다. 카니발 9인승을 가진 정선생님의 차로 출발하여 남양산을 지나 신대구부산 고속도로로 밀양 표충사에 도착한 것이 9시 반입니다. 굽은 도로를 직선으로 펴 놓으니 이제 밀양은 부산에서 지호지간이 되었습니다. 산세는 참으로 아름다웠고 지붕마다 하얀 눈을 한 아름 안고 있는 겨울 표충사는 낯설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산에 눈이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한 저는 처음부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랜드로바를 신고 가려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등산화로 바꿔 신었고 파카 안에 등산 조끼를 입은 것입니다. 고맙게도 정선생이 장갑을 빌려주어 그 덕도 톡톡히 보았습니다.

 등산로는 매우 험난했습니다. 눈이 20cm 정도 쌓여 있어 미끄러워 힘들었습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저는 처음부터 뒤처지기 시작합니다. 조선생님은 제 가방을 매고 가고 막내인 신선생님과 젊은 이 선생님이 뒤에서 밀기도하고 옷을 받아주기도 하며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모두가 고난의 시간이었고, 총 산을 탄 5시간은 완전한 극기 훈련이었습니다. 올라가면서 내가 힘들 때 “휴식!” 하고 외치면 모두들 쉬어주는 등 저는 일행에게 민폐를 많이 끼치고 말았습니다. 위로 올라 갈수록 바람이 차고 세차게 불고 추웠습니다. 나무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인간의 범접을 거부하는 듯 윙윙 무섭게 소리를 질러댑니다.
    

 산행은 힘들지만 설경은 너무 아름답고 장관입니다. 얼어붙은 층층폭포가 주는 감흥은 도무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기기묘묘합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5시간 동안 발목 깊이의 눈을 밟으며 설원을 다니는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너럭바위 위 쌓인 눈을 쓸어내고 쪼그려 앉아 김밥을 먹고 눈 위에 난 동물들의 발자국을 보며 사각사각하는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 힘든 것이 사라지자 간사하게도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절경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겨울산행의 묘미를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재약산의 정상인 천황봉을 가자는 이선생을 겨우 만류하여 정상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중도에서 하산했습니다. 오르막은 다리가 풀려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내리막길은 또한 무릎이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저는 눈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사람은 누구든지 제 수준에 맞게 살아야 고생을 덜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간 선생님들은 모두가 30대, 40대인 반면 제일 연장자인 저는 체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바람돌이처럼 날아다니는 틈에서 거북이 걸음을 걷는 것은 말 그대로 민폐였습니다. 둘째는 과거의 경험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재약산 사자평에 몇 번 온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으로는 군용차량이 다니는 큰 길로 쉬엄쉬엄 사자평까지 간 적이 있는 터라 이번에도 그런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인도한 이선생은 험한 소로를 코스로 잡았기에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현재는 현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셋째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는 것이 힘들다고 낙망치도 말아야 하고 지금 쉽다고 교만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산을 타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06.2.10)

by 리옹 | 2006/02/10 21:35 | 사는 얘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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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대부 at 2006/02/11 10:27
대단하십니다
오늘이 더 아플것이고 내일은 더 아플것입니다. 빨리 풀고 싶으면 등산을 한번 더 하십시요. 평상시 사용 안하던 근육을 사용하셔서 근육이 놀랬을 것입니다. 몇가지 생각에 좀더 생각해 보세요? 왜 그리 힘드셨나요? 남들처럼 가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내 페이스 대로 가면 힘들지 않습니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그렇다고 마냥 쉴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는 포기 하지 않으면 반드시 정상에 올라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앙상한 가지이지만 살아 있는 가지는 봄에 싹을 낸답니다. 그래서 등산을 인생이라고 산악인들은 말을 합니다. 좋은 하루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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