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존심 사는얘기

네 사진만 빼고 다 돌려 줘

 우리학교는 어제 신학기 인사발령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문대로 여자고등학교에서 남자고등학교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82년도에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여고였고 중간에 예술고등학교에 1년, 법인사무실에 1년 근무했던 것을 제외하면 22년을 줄곧 근무했던 정든 곳입니다. 그간 24년 동안이나 여학생들을 가르쳤으니까 지금까지는 여자들과 인연이 많았던 편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어 무척 기대가 되고 설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 섭섭한 마음도 없잖아 있습니다. 여고에는 어느 것 하나 제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저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교도부장, 종교부장 직을 제외하고 교무부장만 11년을 했기에 교육과정이나 제반 규정과 양식과 서류 등에 저와 관련된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수많은 행사들과 업무들이 저의 손을 거쳐 이루어져 왔습니다. 제가 처음 교무부장이 된 것은 88년도 35세 때 일입니다. 당시 설립자 목사님께서는 저의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하시고 최연소 교무부장이라는 파격적인 인사발령을 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부응하여 저는 최선을 다해 일했고 어려운 일들도 잘 감내하며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교무부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방학을 거의 반납하다시피하며 학교 지킴이가 되었고 가장 일찍 출근하여 가장 늦게 퇴근하며 몸 바쳐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나이에 비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인정을 받으며 재단으로부터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학교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재단이 부도가 나고 지금까지 여러 번 재단이 바뀌면서 저는 능력이나 공헌도나 경력과 상관없이 설립자 목사님 편의 사람으로 분류되어 몇 차례 인사에서 상응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승진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을 인정해 주지 않고 능력을 무시당하는 것에는 속이 상합니다.

 
 
 한 남자가 군대를 갔습니다. 몇 달 후 여자친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왔습니다. “우리 이제 헤어져요. 내 사진을 돌려줬으면 좋겠어요.” 남자는 화가 났지만 군에 있는 몸으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대 내에 있는 모든 사진을 다 모은 뒤 편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어떤 사진이 네 사진인지 기억이 안 난다. 네 것만 빼놓고 다른 사진은 돌려보내줘.”

 우리는 놀림을 받을 때나 자기 단점이 들춰지거나 질책을 받을 때, 자기의 능력이나 재능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무시당할 때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합니다. 여자친구로부터 절교선언을 당한 이 유머 속의 남자가 취한 공격적인 행동도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건강한 자존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존심을 양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분명해 집니다. 자존심이 커피 잔만 한 사람과 바다만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커피 잔에는 아주 작은 돌맹이 하나가 떨어지더라도 풍랑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비난에도 마음이 상하고 흥분하며 과민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바다만큼의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지더라도 그때 그뿐 별다른 동요나 풍랑이 일지 않는 법입니다.
 
 자존심(自尊心)은 글자 그대로 자기를 스스로(自) 존중해 주는(尊) 마음가짐(心)입니다.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소중하기에 다른 사람도 자기만큼 소중한 줄을 알게 됩니다. 한나라 명신(名臣)이었던 ‘한신’이 어렸을 때 동네 깡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야하는 수모를 당했지만 그는 태연했습니다. 훗날 대장군이 되었을 때 오히려 그를 장수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존심입니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그는 ‘자존심의 사람’이요 ‘군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존심의 욕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는 소속과 애정욕구가 제대로 충족된 후에야 생기게 됩니다. 자존심은 능력과 성취와 독립과 같은 자기존중과 명성, 평판, 인정 등과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존중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바다 같은 자존심을 지닌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듣게 되거나 무시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라도 동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존심이 상하지 ‘송혜교’나 ‘안젤리나졸라’ 같은 미녀가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 인사이동에 대하여 담담하고 오히려 기쁨과 새로운 기대로 부풀어 있습니다. (2006.2.7)



by 리옹 | 2006/02/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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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펜터 at 2006/02/08 02:36
권기룡 선생님 남고로 가시게 되셨군요. 글을 보아하니 남고에 교감으로 가시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러면 저도 학교에 못 돌아가는데^^ 여기서 공부를 더해야 겠네요.ㅎㅎㅎ 남고 가시면 목이 좀 더 아프실 것 같네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섬겨야 될 자들을 주시니 그 소명에 힘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익한 종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칭찬을 받는 것이 우리의 삶이겠지요. 힘내시고 건강하시고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힘을 주셔서 새로운 일을 잘 감당하시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못 생겼다고 하면 자존심 많이 상할걸요^^ 싫어 안젤리나 졸리. 송혜교는 음.... 그런데 선생님 이 사진들은 도대체 어디서 수집하시는지
한번씩 제가 놀랩니다. 조금은 선정적인 듯...검열에 걸리겠습니다^^
Commented by 대부 at 2006/02/08 23:02
글이 좋아서 즐겨찿기에 등록을 하고 종종 들여다 봅니다.
가끔 들여다 보면서 유추해 보았는데 오늘 한가지만 빼 놓고 모두 풀리게 되었군요. 이름이 권기룡 이라는 것 까지도요
남고로 가시게 되었다고요
가시는 길에도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선생님의 뜻이 일치하기를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r63036303 at 2006/02/09 07:55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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