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샤갈의 ......) 시얘기1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샤갈의 마을에는 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의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打令調·其他』, 1969.)


 김춘수(金春洙, 1922〜2004)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는 샤갈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연상하기 쉬운 고향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네 개의 문장과 15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에서 나타난 샤갈 (Chagall, Marc: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1887~1985])은 어떤 화가인가? 간단히 소개하면 그의 초기 작풍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슬라브의 환상감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개성을 강하게 풍기는 화가다. 소박한 동화의 세계나 고향의 생활, 하늘을 나는 연인들이란 주제를 즐겨 다루었고,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는 화가란 평을 듣는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샤갈의 마을이란 샤갈이 살았던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농촌 마을이거나 샤갈의 그림을 보고 쓴 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샤갈의 그림에 이와 똑같은 제목의 그림은 없고 샤갈의 ‘나의 마을’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시의 첫 문장을 보면 3월에 눈이 내린다는 것은 샤갈의 마을 사람들에게는 시련을 의미한다. 봄 농사를 시작하려고 들판에 선 이 마을 사나이의 관자놀이가 파르르 떠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맥이 사람의 관자놀이에 새로 툭 불거져 나오는 것은 힘들어서 기운이 부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마을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정맥이 돋아 파르르 떠는 그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만든 원흉이 바로 3월에 눈이 내리는 사건이다. 사나이가 들판을 바라보며 앞으로 닥칠 힘든 시련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걱정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예상했던 대로 2, 3 문장에서 눈이 이 마을의 모든 지붕과 굴뚝을 덮을 만큼 많이 내렸다.

 네 번째 문장에서는 사나이의 걱정을 덜어주듯이 눈은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을 물들이고, 아낙들은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하얀 눈이 덮인 지붕과 굴뚝, 그리고 올리브빛의 열매와 집 아궁이의 불길은 흰색과 붉은 색의 대비를 보여주며 샤갈 그림에 나옴직한 아름다운 동화 속 풍경을 띤다. 그런데 이 풍경에 나타나는 사물들은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동화 속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사나이의 살림살이 고민을 덜어주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이 생명을 덮어버리는 부정적인 기능만을 보여줄 뿐 아니라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는 속담처럼 농사의 풍년에 대한 긍정적인 예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눈이 옴으로써 겨울 열매는 올리브빛으로 익어 아름다운 풍경적 가치와 식량으로서의 가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핌으로써 부드럽게 눈에 대항하는 일을 한다.

 전체 시의 이미지를 그려 본다면 사나이의 모습은 하늘까지 가득하고 그 안에서 눈송이와 올리브빛 열매와 아궁이에 불붙이는 아낙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샤갈의 그림이 강조하는 대상을 화면 가득히 그리고 나머지는 작게 그려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에서 사나이는 하늘과 직접 맞닥뜨리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아낙은 집안에서 간접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서도 그렇다. 사나이는 한편으로 아낙과도 대응되는데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사나이/아낙,
                                        밖/안,
                                        하늘/땅,
                                        작고 흰 눈송이/쥐똥만한 붉은 열매,
                                        물(눈)/불,
                                        내려옴/올라감

 사나이가 눈을 맞으며 서 있는 수직적 이미지인데 반하여 아낙은 부엌 아궁이에 앉아 불을 피우고, 사나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 반면에 아낙은 땅의 열매를 거두고 조용히 집 안에서 불을 피운다. 사나이와 아낙의 호응이 느껴지는 영상이다. 아낙은 그 해의 마지막이 될 3월에 내리는 눈에 대응하여 전혀 신경질적이지 않게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사나이가 눈을 맞고 아낙이 불을 지피는 상호 호응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시는 자연에 정면 대결로 또는 아름다운지혜로 대항하는 부부의 모습이라는 한 폭의 아름다운 영상을 그리고 있다.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