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8)일본 국보1호 여행얘기

8. 고오류지(廣隆寺)와 일본국보 제1호

 토다이사(東大寺)의 감격이 방대한 규모와 친자연적인 조화에서 오는 외부 지향적 즐거움이라면 고오류지(廣隆寺)에서의 감동은 미륵보살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잔잔하고 내밀(內密)한 기쁨이다. 백제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과 모양이 거의 같은 이 부처는 실은 우리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절 안내 지(案內紙)에도 백제 전래(百濟傳來)라고 인쇄되어 있다. 눈에 익은 우리의 상(像)을 이국(異國)에서 감상한다는 사실은 묘한 설렘을 준다. 법당(法堂) 정 중앙(正中央)에 미륵상(彌勒像)이 위치하고 좌우사방으로 수십 개의 보살상(菩薩像)을 포치(布置)한 것은 벌써 이 미륵상(彌勒像)이 압권(壓卷)임을 말해 주고 있다. 어깨를 펴고 가부좌(跏趺坐) 자세로 정좌(正坐)한 여느 부처와는 달리 미륵상(彌勒像)은 다소곳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고개 숙임이 생의 무거운 짐으로 인한 깊은 철학적(哲學的) 고뇌(苦惱)를 보여준다면, 미륵상(彌勒像)의 고개 숙임은 단순히 번뇌(煩惱)의 과정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이미 해탈(解脫)한 법열(法悅)과 완성된 사유(思惟)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주먹을 쥐고 턱을 받혀 머리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의 무거움과는 달리, 곰살궂은 손가락을 펴서 얼굴 가까이 간 자세는 이미 속세의 괴로움을 벗은 듯, 음미하면 할수록 깊은 맛이 느껴진다. 깊이는 깊이이되 과정과 완성의 차이요, 고뇌(苦惱)와 법열(法悅)의 차이다. 어쩌면 종교 저 밑바닥에 감추어져 있던 인간의 본성까지 노출되어 법(法)은 속(俗)과 통하듯 이미 부처의 범주를 일탈(逸脫)하여 아름다운 여인으로 미와 향기를 뿜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불상을 보고 “이 세상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미술품을 본적이 없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일인(日人)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처상을 알아보고 국보 제1호로 삼을 만큼 심미안(審美眼)을 지닌 것이다. 우리의 국보 제 1호는 임금이 계신 성내(城內)로 들어가는 주 관문(主關門)인 남대문인 것이 유교적 충 사상의 산물이라면 미륵상은 예술적(藝術的)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귀한 것을 가졌더라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결코 귀하지 않지만 가치를 알면 귀한 것이 된다. 기둥 뒤에 서서 캠코더로 미륵상(彌勒像)을 몇 컷 찍었는데 관리인(管理人)이 부리나케 오더니 제지(制止)한다.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禁)하여 초상권(肖像權)을 보호하는 행동으로 보여진다. 이것만 봐도 이 미륵상(彌勒像)에 대한 일본인의 깊은 애정(愛情)과 보호 본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동경대학의 「구노다께시」(久野健)같은 사람은 한국에서 전해진 것을 부인하기까지 하는지도 모른다. 상(像) 앞에는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나무 좌석이 만들어져 있다. 종교를 넘어 예술 작품을 대하듯 이들은 아름다움을 탐닉(眈溺)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뛰어난 자신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전율(戰慄)하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게 된다. 「골든 벨을 울려라」에서 간혹 나타나는 수재(秀才)들이 헹가래 쳐질 때 맛봄직한 설렘과 자부심(自負心)이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을 보고 난 뒤 고오류지(廣隆寺)를 떠나 숙소에 올 때까지 저녁 내내 가셔지지 않는다. 이러한 설렘은 마지막 날 오사카에서 「동양도자박물관」(東洋陶瓷博物館)에서 우리의 청자(靑磁)와 백자(白磁)를 중국과 일본 자기(磁器)와 아울러 보았을 때도 느낄 수 있었다.(200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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