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6)용안사 여행얘기

6. 료안지(龍安寺), 가장 일본다운 사찰

 셋째 날 여정은 경도(京都)를 상징하는 고쇼(御所)와 「도쿠가와 이에아스」의 「이조성」(二條城)관람으로 시작되었는데 거대한 규모와 잘 가꾸어진 정원은 실로 감탄 할만했다. 이조성에서 우리 가족은 사진을 찍느라 일행을 놓치고 따로 돌았는데 경내가 워낙 넓어 찾을 수가 없었다. 입구에서 캐나다 출신의 아가씨 한 명을 만났는데 일본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다고 했다. 마침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우리의 평창과 몬트리올이 경쟁하여 몬트리올이 이긴 바 있어 그녀는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100원짜리 주화(鑄貨) 한 개를 선물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큰 아이는 제법 의사소통을 하는데 나는 외국인 앞에서는 도통 입이 열려지지 않는다. 나라 밖에 나오면 항상 외국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 번에 돌아가면 영어와 일어와 중국어를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되도록 꾸준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번 일본 기행의 절정(絶頂)은 역시 료안지(龍安寺) 방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고찰(古刹)은 불교 신앙의 생생한 현장이요, 실제로 스님들이 수도하며 불도에 정진(精進)하던 도량(道場)이다. 불국사나 해인사나 범어사나 모두다 불교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일본의 사찰은 모두가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조경(造景)을 구비하여 그 자체로서 존재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수련과 수도를 위한 숨김과 은둔의 그윽함보다는 드러냄과 개방의 세련됨이 있는 듯하다. 용안사는 이러한 양면이 조화되어 있는 곳이다.

 료안지는 1450년 일본 중세 때의 무인 「호소카와 가스모토」가 「도쿠다이지」 집안의 별장을 양도받아 세운 선종(禪宗) 사찰이다.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 불당까지 이르는 길에는 일본 사찰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원(庭園)이 갖추어져 있다. 하늘을 뒤덮은 울창한 수림(樹林) 속을 5분 정도 걸으면 본 절이 나오는데 담장 밖은 「로쿠온지」절(金閣寺)과 함께 지센카이유식(池泉回遊式)정원으로 되어 있다. 극락정토(極樂淨土)를 표현하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는 양식이다. 연못 주위는 울창한 수목원이 생기발랄한 이끼를 안고 세월의 유구함을 자랑하고 있다. 연못 주위를 돌아서 거니는 회유식(回遊式) 정원은 담장 밖의 이야기고 담장 안에는 특이하게도 흰모래를 깔아 강, 폭포 등을 표현한 그 유명한 「가레산스이식」(枯山水式) 정원이 있다.

 
 료안지의 돌 정원은 중국에서 전해진 산수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 송나라의 화가 종병(宗炳)은 산수화의 투시적(透視的) 원근법을 도입한 최초의 산수화가로 그는 산수의 ‘상징’이라는 화법에 대하여 ‘멀리 만리(萬里)까지 떨어져 있는 것을 지척(咫尺)으로 표현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료안지의 정원은 이러한 종병의 주장을 그대로 실현한 정원인데 보는 순간 “아! 이럴 수도 있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흰색의 정밀감(靜謐感)은 사람을 숨 막히게 매료시킨다. 이는 잘 가꿔진 다른 정원들이 따라오지 못할 독특한 풍미(風味)를 지닌 걸작품이었다. 이미 많은 내방객들이 마루에 앉아 넋을 잃고 감상하고 있다. 76평의 마당에 꽃, 나무, 연못 대신에 상징성을 가진 15개의 돌이 배치되고 나머지 공간에는 하얀 모래만 깔아 두었다. 하얀 모래는 바다를, 돌은 섬을 상징한다. 세인(世人)들이 말하는 「정원예술의 극치」라는 극찬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15개의 돌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한 개는 반드시 숨겨져서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오유지족(吾唯知足) 즉, “충분(充分)히 가지지 않더라도 만족(滿足)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을 표현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정원의 사상적 배경은 불교의 공(空)이나 무(無)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정원을 ‘비어 있는 정원’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여백미와 단순미로만 표현된 독특한 공간 구성은 돌의 모양, 크기, 원근, 고저, 그리고 하얀 모래가 주는 이미지의 상호작용으로 사람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단체행동을 해야 하는 처지지만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일행이 다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을 무심의 경지로 앉았다. 다음 여정을 향해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토다이사(東大寺)가 있는 나라(奈良)로 가는 내내 나는 몇 끼를 굶은 사람처럼 마음의 허기를 느껴야만 했다.(20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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