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5)일본생각 여행얘기

5. 일본 단상(斷想)

 우리는 다시 이동하여 임진왜란의 아픔이 서린 이총(耳塚)을 보았다. 이총은 도시의 한 쪽에 숨어 있는 실로 초라하고 조그마한 무덤이다. 우리에게는 통한의 흙무덤이지만 저들에게는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흔적일 텐데 이를 지금까지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박물관회 회장님이 대표로 분향할 때에는 모두들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늦은 오후에 다시 꼬불꼬불 길을 돌아 황금으로 벽을 칠했다는 「로쿠온지」절(金閣寺)을 구경했다. 이 전은 사리전 금각(金閣)으로 유명하고 전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서쪽의 산을 배경으로 한 이 정원은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대표적인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으로서 유명한 곳이다.

 

 여기 거리를 지나다보면 중년 이상 여자들 중에는 체구가 유난히도 작고 못난 구강구조를 지닌 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만난 초로(初老)의 주인도 턱이 들어가고 뻐드렁니를 가진 일본인의 캐리커쳐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마다 치과(齒科)가 유난히 많다. 예사 가정집과 흡사한 외양을 갖춘 조그마한 치과가 많은 이유는 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고 그 원인은 화산재와 용암에서 나오는 성분이 많은 토양(土壤)과 관계있다고 한다.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 잔디가 깔리지 않은 흙 부분이 대체로 검은색이다. 우리의 황토색과 대조적인 이러한 검은 토양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기 때문에 이가 검게 변색되거나 충치(蟲齒)가 많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신세대들은 품질이나 토양 개량, 수입 농산물 등으로 그렇진 않지만 60세대 이상의 노인층에는 왜소(矮小)한 골격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듯이 토양이 좋은 것도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들의 친절과 겸손은 이미 몸에 베어 습관화, 내면화되어 있다. 그것이 의도하거나 노력해서 표현되는 것이라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을 것인데 저들의 친절과 겸손은 기성복(旣成服)이 아닌 맞춤복처럼 자연스럽고 도무지 어색하지가 않다. 또한 그것이 작위적(作爲的)이라면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드러나기란 어려운 법인데 호텔에서도, 버스에서도, 가게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저들의 친절은 마냥 흘러넘치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경쾌하게 던지는 “하이!” “스미마셍!” 하는 어조(語調)는 만들어진 것이 아닌 타고난 자질과 문화(文化)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국회에서 발언하는 일본 총리(總理)가 동료의원들 향해 몇 번이나 거듭해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낯설어 보이는데 여기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길거리에서 일행과 헤어지는 중년 여인이 열네 번을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서는 경악(驚愕)을 금(禁)할 수가 없다. 이들의 친절과 겸손은 “우리 친절 합시다!”, “우리 겸손 합시다!” 하는 캠페인 차원을 넘어선 선천적 자산인 것이다. 이렇게 우러나는 친절과 겸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래 전부터 중국과 우리나라 등 선진 대륙과 접(接)한 섬나라로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남에게 폐(弊) 안 끼치는 예절교육의 위대한 승리일까?
 
 일본의 이러한 겉으로 드러내는 친절의 문화는 우리의 무표정하고 굳어있고 체면과 정(情)을 중시하는 양반문화(兩班文化)와는 대조적이다. 우리는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낯간지럽게 여기고 소인배의 행태로까지 비하시킨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점잖지 못한 행위고 표현되지 않은 내밀한 정의 교감이나 끈끈한 마음의 교감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일본이 속보다 겉을 중시하는 표면과 치례의 문화라면 우리는 겉보다 속에 무게 중심을 두는 이면과 정(情)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 옛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러하다. 어머니는 결코 자식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법이 없고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래도 자식들은 그 무형의 사랑을 감지해 낸다. 내밀히 흐르는 이러한 사랑의 교감은 부모와 자식에게서도 표현되지 않고 숨어 있기 마련이다.

 일본에서는 때가 되어 누구 집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주인이 식사라도 같이하자고 거듭 권하더라도 끝까지 사양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禮)라고 한다. 눈치 없이 덥석 앉아서 밥을 먹는다면 그는 두고두고 비난거리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주인이 거듭 권유하는데도 기어이 뿌리치고 간다면 오히려 오래도록 욕(辱)을 먹어야 되는 무례한 행동이 되고 만다. 겉의 표현과 속의 생각이 다른 이들의 습관은 “고려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을 즐겨 쓰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거절하고자 할 때 “안 됩니다.”, “싫습니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고 “고려해 보겠습니다.”라는 애매(曖昧)한 말을 즐겨 쓰는데 이는 긍정적인 대답이 아니라 완곡(婉曲)한 거절의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러한 의식과 문화의 차이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자동차 운전석의 위치가 오른쪽인 것이 그렇고 차량의 운행이 우리와는 달리 좌회전 중심 체제로 되어 있다. 우리는 끼어드는 차량에 거부와 경고의 표시로 라이트를 깜빡이지만 저들은 양보와 수용의 표시로 라이트를 깜빡인다. 가지 수 많은 반찬을 벌여놓고 푸짐히 먹는 우리의 식생활과 대조적으로 저들의 식사는 간결하고 담백하고 소식(小食)이다. 우리의 장례(葬禮)가 매장(埋葬) 중심문화라면 저들은 백퍼센트 화장(火葬) 문화이다. 대인관계에서도 우리에게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보는 밀착의 문화가 있다면 저들에게는 남에게 폐(弊) 안 끼치는 거리의 문화가 있다. 우리가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향수하는 과거 지향적(過去指向的) 성향의 민족이라면 저들은 지나간 과거는 그냥 지난 것으로 치부(置簿)하고 현재와 미래에 관심을 두는 미래지향적(未來指向的)인 성향이 더 강하다. 그래서 저들은 과거사를 왜곡(歪曲)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 후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서점에 들러 음악 CD와 책 몇 권을 샀다. (200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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